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압도된다라는 말이 이런건가 싶어요.
· 참치
후지산은 아무 때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. 그냥 여행 가이드에 나오는 흔한 이야기쯤으로 넘겼는데, 가와구치코로 가는 길 위에서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 말이었는지 몸소 확인하게 됐다.
가와구치코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.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내내 창밖만 바라봤다. 후지산은 언제쯤 나타날까, 어느 쪽에서 보일까, 괜히 혼자 설레는 마음이었다.
한참을 달린 끝에 저 멀리 거대한 산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. 그런데 기대하던 그 완벽한 원뿔 모양 대신, 산 위로 구름이 두툼하게 내려앉아 있었다. 정상은커녕 산 전체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느낌이었다.

"저게 후지산이래." 하고 말해도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. 그래도 신기하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. 저 구름 아래에 분명 산이 있다고 생각하니, 오히려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. 오늘 안에 한 번쯤은 보여주겠지, 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.
버스에서 내려 가와구치코역에 도착했다. 역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보니 후지산은 여전히 구름 이불을 포근하게 덮고 있었다. 버스 안에서 본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.

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까지 모습을 안 보여주나 싶어 살짝 아쉬웠다. 그래도 역 앞의 공기는 상쾌했고,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는 보이겠지 싶어서 발걸음은 가벼웠다. 후지산이 처음부터 쉽게 보이면 오히려 싱거웠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달래며, 호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.
호숫가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. 물가 너머로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. 구름이 조금씩 물러나며 산의 윤곽이 또렷해진 순간이었다.

버스 안이나 역 앞에서 본 풍경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. 눈앞에 탁 트인 호수가 있고, 그 너머로 산이 서 있다. 그저 그뿐인데도 한참 동안 말없이 서서 바라보게 됐다. 사진으로는 이 크기와 분위기가 다 담기지 않아서, 중간중간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으로 오래 담았다. 기다린 시간이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.
이번 여행에서 가장 일본다웠던 장면은 의외로 편의점 앞에서 나왔다. 로손 간판 바로 위로 후지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었다.

세계적인 명산이 동네 편의점 지붕 위에 걸려 있다니, 이 조합이 묘하게 웃겼다. 거창한 관광지의 풍경과 일상의 한 조각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었다. 이곳 사람들에게 후지산은 매일 올려다보는 풍경의 일부일 텐데, 그런 생각을 하니 여행자인 내가 잠깐 이 동네에 스며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.
#후지산 #일본 #도쿄 #여행